저녁빛이 남은 골목
2026.04.04
늦게 나온 산책
해야 할 일을 정리하다 보니 나설 시간이 늦어졌다. 창문으로 들어오던 빛은 이미 사라졌지만 밖에는 조금 남아 있었다. 서둘러 멀리 가기보다 가까운 골목을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오래 걷지 못해도 나온 것 자체로 충분한 날이 있다.
빛이 닿는 곳
건물 사이로 들어온 빛이 한쪽 벽만 밝히고 있었다. 반대편 벽은 차갑게 보였고, 가운데를 지나는 사람의 옷 색은 몇 걸음마다 달라졌다. 같은 골목 안에서도 밝기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생각하지 않았다.
잠깐 멈춰 서 있었더니 뒤에서 오던 사람이 먼저 지나갔다. 길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벽 쪽으로 비켰다. 풍경을 보고 싶은 마음과 누군가의 평범한 이동이 겹치는 자리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 두기로 했다.
한 바퀴의 끝
돌아오는 동안 골목은 금방 어두워졌다. 오늘은 좋은 빛을 놓쳤다는 생각보다 남은 빛을 조금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의 제목도 아쉬움 대신 본 것을 적는 쪽으로 정했다. 해가 완전히 진 뒤에는 집 앞 가로등이 평소와 같은 밝기로 켜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