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친 뒤의 짧은 산책

2026.04.03

우산을 접은 뒤

비가 완전히 멎었는지 창문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다. 우산을 들고 나왔지만 골목 끝에 닿기 전에 접었다. 길바닥은 아직 젖어 있었고, 차가 지나간 자리에만 가느다란 마른 선이 생겨 있었다. 평소보다 발밑을 많이 보게 되는 날이었다.


돌아가는 길

큰 물웅덩이 하나를 피해 반대편 인도로 건넜다. 그 덕분에 늘 지나치던 작은 계단을 보았다. 계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젖은 돌의 색이 조금씩 달랐다. 목적지를 바꾼 것은 아니고 걷는 선이 잠깐 달라졌을 뿐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화면으로 옮기면 이 장면에서 무엇을 남겨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였다. 대신 빗물이 가장 늦게 마르는 자리를 한 번 더 보았다.


오늘의 기록

돌아와서는 바지 밑단을 말리고 우산을 펼쳐 두었다. 산책은 짧았지만 집에 돌아온 뒤에도 할 일이 조금 남았다. 오늘 메모에는 비의 양도 걷는 거리도 없다. 물웅덩이 때문에 길을 한 번 건넜다는 사실만 적었다. 이런 정도의 기록도 다음에 읽으면 그날의 걸음을 떠올리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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